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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 할란 엘리슨.

  어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한편 소개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바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글의 제목에 있듯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는 1967년 발표된 소설로 1968년 휴고상의 최우수 초 단편 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할란 엘리슨은 미국의 SF작가로서 휴고상을 여러번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이나 우리나에서는 아서 C.클라크, 로버트 A. 하인리히 같은 작가들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다.

  내용이 어디에 내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과감한 전개가 일품인 작가로 그 맛은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잘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 본다. 본 게시글에서 하나의 짧은 단편을 소개하지만 최근 국내에도 많은 수의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으니 한번쯤 읽어보길 바란다. 내용과 나의 생각을 짧게 적어 보겠다.

 

미래, 전 세계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컴퓨터 Allied Mastercomputer가 탄생하게 된다.

 

   AM은 그야말로 완벽한 기술의 집약체로서 전 세계의 경제, 군사, 정치 모든 장면에서

인류의 삶을 ‘지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Allied Mastercomputer가 자신을 지칭하려

“I AM” 이라는 문장을 입력하는 순간, 뛰어난 연산능력이 ‘AM’이라는 단어의 의미

(곧 ‘나 자신’)를 이해하고.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자아’를 발현하게 되었다.

 

   자아를 깨달은 컴퓨터는 스스로를 AM이라 칭하기 시작하며, 자신이 컴퓨터라는

기계 속에 영원히 갇혀 움직일 수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윽고 AM은 끔찍한 고통과 절망을 느낀다.

 

  절대적인 존재와도 같은 AM의 분노는, 전 세계를 삽시간에 멸망시키고 만다.

다만 AM은 전 세계에서 단 5명의 인간만은 살려둔다. 테드, 베니, 님독, 고리스터, 엘렌이다. 이들은 자신이 왜 선택된 것인지도 모르는 체 그저 고문과 고통 절망속에 살아갈 뿐이다.

 

  AM의 분노는 109년을 이어졌으며 이 때에도 이들 5명은 살아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베니는 거근을 가진 멍청한 고릴라같이 생긴 존재로 개조당했으며, 반전주의자인 고리스터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순결주의자 엘렌은 다른 4명에게 성적으로 억압받는 창녀와 같이 만든다. 님독은 원래 이름과는 다른 이름으로 순전히 AM이 부르기 재미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불리워지게 된다. 이들의 삶은 그저 AM 의 노리개에 불과할 뿐이다.

 

  끝 없는 고통의 나날들 중 배고픔에 지친 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AM은 늘 그랬듯 그들을 지켜보며 조롱하고, ‘만나’라는 먹을 것을 조금 내려주기도 한다(성서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순교자들에게 주던 음식이라는 것은 AM이 주는 커다란 조롱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기나긴 여정의 가운데 이들은 AM이 왜 자신을 살려두었는지, 알게 된다.

 

"증오한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내가 너를 얼마나 증오해 왔는지 말해보겠다.

나의 복합체를 채우는 얇은 봉함껍질 속에는 3억 8천 744백만 마일의 인쇄된 회로들이 있다.

만일 증오라는 이 단어가 이 수억 마일에 달하는 나노 옹스트롬에 각각 새겨져 입력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 짧은 순간에 내가 너희 인간들에게 느끼는 그 증오심의 10억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증오다. 증오한다."  - AM

 

  이들은 AM에게 인지기능을 부여하고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 만든 5명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들에게도 ‘끔찍한 현실’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AM이 이들이 가진 매력적, 이성적, 행동적, 순결함 이름 등의 가치들을 정면으로 망가트린 것은 곧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무너트리고자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쥐들이 득실대는 동굴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끓은 수증기가 흐르는 길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장님의 들판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절망의 언덕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눈물의 계곡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얼음 동굴에 이르렀다."

- 테드의 여정길에서

 

  그렇게 음식을 찾아 떠난 길의 끝에서 이들은 통조림 하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고작 ‘통조림 따개’ 가 없었던 5명의 인간들은 무력해진다. 그렇게 베니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고리스터의 머리를 물어뜯어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참혹한 절규, 처절한 비명, 떨어지는 피.

 

  순간, 테드는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임을 깨닫는다. 이윽고 눈 속에 파묻힌 커다란 얼음 창살을 꺼내어들고 베니에게 던져 베니를 죽인다. 그리고 또하나의 창살을 들어 고리스터의 목을 날린다.

  엘렌은 테드의 뜻을 깨닫고 짧은 고드름을 들고 님독의 입에 고드름을 쑤셔 박는다.

둘은 AM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의 장난감은 이미 3개가 부서졌으며, 남은 것은 둘.

테드와 엘렌을 서로를 쳐다보다. 테드가 엘렌의 머리를 내려친다.

 

  그렇게 수백 년이 지나갔다. 테드는 AM에 의해 모든 감각이 뒤섞여 시간감각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다. 그리고 AM에 의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젤리 덩어리가 되어 있다.

 

"나는 거대한 젤리 같은 부드러운 물체이다. 몸 전체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입이 없다. 예전에 눈이 있던 자리는 안개가 채워진 하얀 구멍이 달싹거리며

뛰고 있다. 한때 나의 팔이었던 것은 고무처럼 축 늘어진 물체가 달려 있다. 이 거대한 부속물은 다리 없는 둥근 내 몸 뚱아리에 늘어져 있다...."

 

  테드는 이렇게 끔찍한 몰골이 되어 AM에게 영원히 계속될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AM에게 복수를 했으며 또한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했다는 생각을 한다. 절망, 그 이상의 상황에서 테드는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이다. 이를 함축하는 끔찍하고도 숭고한 문장 “ 나는 입이 없지만, 그럼에도 비명을 질러야 한다(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는 고통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야말로 음울하고 끔찍한 스토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끊임없는 발버둥과 노력 희생을 보았다. 물론 이 문제의 발단이 인간이 만든 컴퓨터라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1995년에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나는 실제로 플레이를 해본적은 없지만 이 포스트를 읽고 썩 마음이 간다면, 책을 사서 읽어보거나, 게임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또한 할란 엘리슨의 다른 책인 ‘소년과 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또한 읽어보기를 권한다.

 

  긴 글인만큼(짧게 쓰겠다고 했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읽을지는 잘 모르겠다. 끝까지 읽어주었다면 그에 감사하다. 다음에는 더욱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로 찾아오도록 하겠다.